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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페니키아의 역사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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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신화적 기원 결합된 다신 신앙


발달된 문명으로 일찍부터 인근지역에 영향
구약성경, 페니키아와 다양한 형태의 교류 언급


 페니키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자주빛 염료와 알파벳, 항해술 등이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동쪽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보통 30마일 이내의 지역에 속하며 저지대에서는 4마일 이하로 좁혀진다. 남북범위는 고대의 비블로스(성경의 Gebal; 시 83:7; 겔 27:9)를 중심으로 2백마일의 길이이며 현재 레바논의 영역과 비슷하다.


 1. 명칭
 페니키아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불려진 이름이며, 자주빛 민족이란 뜻이다. 그 이름은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1800년 이전에 지중해 연안의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거주하면서 바다 달팽이에서 추출한 자주빛 염료로 인하여 붙여진 것이다. 성경에는 페니키아 도시들의 명칭과 상응하는 시돈, 알가(Arka), 아르왓, 스말(Zemar) 등의 사람들이 가나안의 자손으로 언급된다(창 10:15-18). 성경의 계보에 의하면 가나안은 셈족이 아니라 함족에 속하지만, 그것은 일부지도자들의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관계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비블로스의 통치자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고왕국시대에 태양신 레(Re)의 아들로 언급되며, 18왕조의 두트모세 3세는 두로와 아르왓, 시미라 등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혈통적으로 본다면 페니키아 사람들의 대부분은 셈족이며 가나안족(또는 아모리족)이다. 페니키아는 발음상으로 자주빛 염료를 추출하는 꼭두서니 식물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푸와와 연관지을 수 있으며, 성경에서 잇사갈의 아들 부와라는 이름도 참조해야 한다(창 46:13). 부와에게서 난 부니라는 명칭(민 26:23)은 페니키아의 그리스어나 라틴어와 가장 가깝다.
 또한 가나안은 그들의 산업적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어 구약성경에서 상고(욥 41:6; 잠 31:24; 슥 14:21)로 나타난다. 페니키아는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부터 비블로스 항구를 통하여 이집트와 교역하였으며 목재(삼나무)를 많이 수출하였다. 목재는 메소포타미아의 국가들도 원하던 것이어서 그들은 유프라테스강을 이용하여 하류로 뗏목을 만들어 수송하곤 하였다. 성경에도 솔로몬이 두로왕 히람에게서 바다로 통하여 목재를 공급받은 사실이 기록되었다(왕상 5:9).


 2. 언어와 문화
 페니키아 언어는 기본적으로 레반트 지역의 셈어 사용 민족들과 같은 언어였기 때문에 지역적 차이는 있어도 적어도 기원전 9세기까지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왕상 17:8-24 참조). 페니키아인들은 그들이 발명한 문자를 여러 곳에 전파했지만, 막상 그들 자신의 글은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그들이 사용한 용지인 파피루스가 쉽게 부식되어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그발을 파피루스의 그리스어인 비블로스라고 부른 까닭은 그곳에 책의 재료인 파피루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오늘날 남아 있지는 않지만 페니키아의 여러 문학작품들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가 발견된다. 요셉푸스는 두로의 공식적 기록문서에 대해 말하고 있고, 디우스(Dius)가 페니키아의 역사를 기록하였다고 전한다. 그밖에도 기원전 11세기에 속하는 페니키아의 창조설화도 전해진다. 이스라엘 왕국 시절 히브리 역사가들은 페니키아인들의 문학작품을 많이 참조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구약성경은 자주 그들과의 법률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호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삼상 10:25; 삼하 11:14f; 왕상 21:8f; 사 8:1 등).


 3. 종교
 페니키아는 다신교를 믿었으며 보통 한 가정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의 세 구성요소를 가진 것처럼 신들도 삼신적인 체제를 가진 것 같다. 또한 비블로스의 엘리온과 바알라트, 두로의 아스타르테와 멜카르트 등 한쌍으로 나오는 신들의 모습도 자주 나타난다. 신들에게 드리는 제의는 희생제사와 헌물, 기도, 정결의식 등으로 구분된다. 제물로는 소, 양, 염소, 사슴종류 등과 식물을 바쳤다. 엘리야의 이야기에 나오는 페니키아의 제의를 보면 거룩하게 여겨지는 갈멜산에 모여 바알의 선지자들에 의해 제사가 집행되었다. 희생제물로 소를 잡아 각을 떠서 불로 태워 드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왕상 18:20∼40). 또한 예후의 바알 제사장 숙청 이야기에서 바알을 위한 큰 제사를 빙자하여 바알 제사장들을 무수히 죽인 것을 볼 때, 대연회가 종종 열렸던 것 같으며 왕도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왕하 10:18∼27).
 헌물은 다른 셈족들의 습관과 다를 바 없었으나 특별히 페니키아에서는 농업이나 공업제품, 예컨대 새긴 물품과 금속제품, 조각품, 도자기, 테라코타 등이 바쳐졌다. 기도는 서원을 하고 이를 실행하는 내용이며, 발견된 대부분의 서원기도 끝에는 그들의 신이 헌신자의 기도를 들었다는 정형적인 문구가 들어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돼지 뼈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돼지고기를 금했던 것 같다. 페니키아인들은 미리 마련된 제사장소나 신성하게 여기는 동굴이나 산봉우리, 돌출된 암석, 샘, 강, 호수 등지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특히 자연적이나 인공적 숲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이 신년과 춘분, 하지, 추분 등에 제사를 드린 것을 볼 때 종교의식이 농경과 신화적 기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제사장은 두 부류가 있었으며 대제사장의 지도 아래 일정한 교육을 받았다.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장

포항순복음교회 이호상 목사
순복음노원교회(유재필 목사)